[일간환경연합 한선미 기자]다음은 밤은 선생이요. 책은 도끼다. 라 는 주제로 한기봉 국민대 교수의 기고 칼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제목이 있다.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이다. 고려대에서 평생 불문학을 가르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여러 작가들이 이 시대 최고의 산문집이라고 상찬했다.
일전에 청와대에 초청받은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해서 뉴스를 타기도 한 책이다. 김정숙 여사는 노 의원에게 보낸 답례의 독후감에서 “시대의 비천함을 함께 마음 아파하고, 더러 못 생긴 것, 낮게 놓여있는 것, 투박하거나 소박한 것을 향하는 선생의 따뜻한 시선”이라고 했다.(이 편지는 노 의원이 공개했다.)
내가 오래전 이 책을 산 건 사실 제목에 꽂혀서다. 아름답고 간결한 아포리즘(잠언) 같기도 하고, 한 줄 시 같기도 하다. 프랑스 속담 ‘La nuit porte conseil’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이라고 한다. 이 말은 ‘밤은 충고(가르침)를 가져다 준다’ 정도로 해석되는데 참 멋스럽게 우리말로 옮겼다.
선생이 이 제목으로 말하고자 한 건 무얼까. 여러 인터뷰에서 한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세계다. 밝은 곳에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다 아는 가능성이고, 어둠 속에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열릴 길이다.”
밤의 창가에 조용히 서본다. 무엇이 보일까. 선생은 ‘보지 못한 것’ ‘보이지 않던 것’에 대해 말하려는 것일 게다. 한낮의 창은 부산한 바깥세상을 보여주지만 한밤의 창은 오롯이 내 얼굴만을 비춘다. 득의양양한 얼굴이든, 창백한 고뇌의 주름살이든, 삶에 지친 초라한 안색이든, 슬픈 자화상이든, 추악한 몰골이든 그대로 투영한다. 밤의 창은 나의 내면의 거울이다.
독서 이야기를 하려다 이 책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됐다. 선생은 몸을 상하기 전까지는 밤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침 6시에 잠드는 올뻬미였다고 한다. 선생은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은 저한테 친구이자 원수고, 그리고 또 ‘빽’이기도 하지요. 대개 서재에 있는 책들의 경우는 죽은 사람이 쓴 글이 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데 책은 그 사람들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끝도 없이 그 사람들과 대화하고 가르침을 받고, 또 싸우기도 하면서 무덤 속에서 그 사람들을 끄집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등화가친의 계절이 왔다. 사실 여러 조사를 보면 가을보다는 휴가철인 여름에 도서 판매량이 더 많다. 그런데 독서의 맛은 역시 가을이 제격이다. 휴가철에 책 한두 권 가방에 넣고가서 자투리 시간에 뒤적이는 건 ‘잉여독서’라고 나는 표현한 적이 있다. 책을 읽고 싶은 내면의 간절한 욕구라기보다는 “아 뭐 시간도 많은데 책이나 한 권 읽어볼까?”하는 심리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독서란 안 해도 그만이고, 어쩌다 하면 뭐 좀 있어 보이는 잉여행위처럼 돼버렸다.
그런 독서를 비판하자는 건 아니다. 어떻든 책을 잡기 시작했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지구상에는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두 종류의 다른 인간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몰입이다. 잉여의 시간에는 성찰과 통찰이 찾아오기 어렵다.
한때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몰입의 즐거움’에서 저자 칙센트미하이 시카고대 교수는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조건으로 몰입(flow)을 들었다.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삶의 사소한 순간순간에도 몰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 ‘변신’ 저자의 말에서)
몰입하는 독서는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단어와 문장의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자국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 곳에서 얼어붙은 감성과 잠자는 세포가 싹을 틔워 가지를 뻗는 것이다. 광고인 박웅현은 저서 ‘책은 도끼다’에서 카프카의 이 말을 차용해 어떤 눈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체험을 통해 말했다.
리더스 하이(readers’ high)라는 말이 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란 용어에 빗댄 것이다. ‘하이’는 보통 마약을 복용하고 기분이 극도로 좋아진 상태를 말한다. 러너스 하이는 미국 심리학자 맨델이 만든 말인데, 마라톤을 하다보면 뇌에서 엔돌핀이 계속 분비돼 어느 순간 신체의 고통을 잊게 하고 무아의 경지가 되는 지점이 온다고 한다. 보통 35㎞ 지점이라고 한다.
독서는 정신의 마라톤이다. 꼭 독서광이 아니어도 마라톤을 하듯 묵묵히 한눈을 팔지 않고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책은 조화를 부린다. 작가와 내가 대화하고, 내가 주인공으로 환치되고, 문장과 내가 한 몸이 된 거 같은 순간을 만난다.
공자를 읽다가 인간의 도리를, 니체를 읽다가 삶의 비극적 통찰을, 톨스토이를 읽다가 사랑과 욕망과 구원의 본질을, 카뮈를 읽다가 세상의 부조리함을, 카잔차키스를 읽다가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임을, 문득 그러나 맹렬하게 깨닫는 순간이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가슴 벅찬 희열이 솟구친다. 실타래처럼 얽힌 오욕과 칠정이, 생과 사의 수수께끼가 답안지를 내민다. 뇌는 블랙홀이 된다. 그게 리더스 하이다.
가을밤은 차분하고 길어서 책과 벗하기 좋다. 밤은 선생이고 책은 도끼 같지 않는가. 가보지 못한 길을 보여주는 선생이고, 나의 미욱함과 내 안의 나태와 삶의 권태를 깨주는 도끼날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그대의 서재에서 “Eureka(유레카)”의 외침이 있기를.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정리=한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