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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히말라야 16좌 완등을 가능케 한 스무살 설악의 추억
  • 장민주 기자
  • 등록 2016-10-07 16:13:12
  • 수정 2016-10-07 16: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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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인생의 가을여행/나를 바꾸다] 엄홍길 산악인

[일간환경연합 장민주 기자]다음은 산악인 엄홍길 이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가능하게 한 스무살 가을여행 설악산의 추억이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시간을 산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물다섯 살에 에베레스트산에 첫 도전장을 내민 이후 단 한순간도 히말라야 16개 봉우리를 잊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 완등에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나요?”라고 물어본다. 그 이유는 나는 산에 미쳤기 때문이다.



엄홍길 산악인

나는 어린 시절을 경기 의정부의 원도봉산에서 보냈다. 부모님은 산 중턱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식당과 숙박업을 하셨는데, 그 때문에 나는 산을 놀이터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산속에서 다람쥐와 토끼를 잡으러 다녔고, 산봉우리와 계곡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어느새 나는 내 또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암벽 등반과 산타기 등을 잘하는, 산을 좋아하는 소년이 돼 있었다.

 

이때까지는 산이 왜 좋은지 잘 모른 채 무작정 산을 타러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고상돈 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내가 히말라야의 설산을 동경하게 된 것이 아마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등반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찾은 ‘설악산’ 등반은 나를 진정한 산사람으로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나서 나는 산악회 선배들과 가을 설악산 등반을 갔다. 그 전에도 몇번 설악산을 가봤는데 이때의 등반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할 만큼 여운과 감동이 컸다.

 

내설악 용대리에서 시작해 백담사를 지나 수렴동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가 좋다는 봉정암을 시작으로 소청, 중청, 대청을 거쳐 희운각 산장에서 두 번째 숙박을 하고 내려오는 코스였다. 이때가 10월 초였는데 가는 곳마다 발걸음이 멈춰지고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빼어난 경치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다.

 

능선을 잇는 기암괴석과 암벽, 바위, 푸른 계곡물, 멀리 보이는 속초 바다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 자체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특히 가을산의 묘미는 바로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의 단풍이다. 나는 1급 청정수의 맑은 계곡물에 비치는 알록달록한 단풍잎과 파란 가을 하늘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곤 했다.

가을산.(사진=동아DB)
가을산.(사진=동아DB)

스무 살의 만추 등반,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을 설악산 덕분에 산의 매력에 빠져

초봄, 여름, 겨울 등 설악산은 우리나라의 대표 명산답게사계절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설악산은 수없이 가봤다. 하지만 나는 스무 살 무렵 단풍이 무르익었던 ‘만추 등반’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감동과 여운으로 내가 산에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가을의 설악산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형용할 수 없는 가을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있으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초라한지, 세상사의 고민과 걱정이 얼마나 작은지도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를 키운 것은 도봉산이고, 스무 살 청년 시절의 나를 키운 것은 설악산이다. 도봉산과 설악산의 맑은 정기는 내가 히말라야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의 모태가 됐다. 산을 오르면서 산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이 커졌고, 더 큰 세계를 탐험하고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리고 히말라야에 발을 내디딘 뒤로는 히말라야에 중독돼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누구나 살면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간들이 있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될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혹은 나 혼자만의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산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고, 내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 같은 존재다. 수없이 많은 가을 여행지가 있겠지만, 산사람인 나는 만추의 절경을 자랑하는 가을 설악산을 추천한다. 언뜻 보면 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산에서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글· 엄홍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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