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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달빛 안내 받으며 시간 여행 가볼까.
  • 신상미 기자
  • 등록 2016-08-05 15: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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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백년 고궁의 밤

[일간환경연합 신상미 기자]도시의 밤은 낮보다 즐겁다.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켜진 고궁엔 조선 오백년 고도의 정취가 가득하고, 문화의 거리엔 밤늦은 시간까지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빛나는 네온사인으로 흥겹다. 더위에 지쳐 잠을 못 이루는 당신에게 자연이 선물하는 밤풍경과 도시가 선사하는 밤나들이를 소개한다.

 

고궁이 3~4년 전부터 밤에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궁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문화재청은 1년에 네 차례 야간 특별관람을 진행하는데, 3회 차인 현재는 8월 19일까지 야간에 고궁을 개방한다. 관람 시간은 경복궁과 창경궁 모두 오후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다.


어둠이 낮게 깔리고 조명이 켜진 광화문.

한여름 밤, 궁궐로 여행을 떠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먼저 인터넷으로 야간 특별관람 티켓을 예매해야 한다. 가격은 경복궁 3000원, 창경궁 1000원이다. 인터넷 예매 후 잔여분을 현장 판매용으로 내놓기 때문에 현장에서 표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예매에 실패했다고 좌절하지는 말자. 입장 당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간다면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오후 7시. 한여름이라 그런지 저녁이라도 한낮같이 환하다. 오후 6시 30분 주간 개방을 끝낸 경복궁이 잠시 숨을 고른다. 굳게 닫힌 문 앞으로 인터넷에서 티켓을 예매한 관람객들이 줄지어 섰다. 입장을 기다리는 것이지만, 경복궁의 야간 특별관람은 선착순 입장이 아니다. 그러니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사위 어두워지고 조명 켜지면
주변 빌딩 모습 사라지고 궁(宮)만 남아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 관람객의 대부분이 젊은 층인데, 친구끼리 연인끼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다. 색동저고리와 분홍치마는 기본이고, 화려하게 금실을 수놓은 예복을 입은 커플이나 갓을 갖춰 쓴 선비들, 일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어우동 복장을 갖춰 입고 온 관람객도 보인다.

해가 지자 웅장함이 더하는 경복궁 근정전.
해가 지자 웅장함이 더하는 경복궁 근정전.

경회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한복 입은 소녀들.
경회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한복 입은 소녀들.

경복궁의 야간 특별관람은 하루 2700명만이 입장 가능하다. 선택받은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덕분에 경복궁은 번잡하지 않다. 야간 입장객은 일부 권역만 관람이 가능해 2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코스는 광화문과 근정전, 강녕전, 교태전, 경회루 권역이다. 해설사의 설명 없이 자유 관람으로 이뤄진다.

 

한여름 밤에 떠나는 경복궁 여행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여름밤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다. 야간 개장을 하는 고궁들은 일부 중요한 시설물에만 은은한 조명을 비춘다. 경복궁 역시 그러한데, 사위가 어두워지고 경관 조명이 켜지면 크고 작은 주변 빌딩이 모습을 감춘다. 그러면 궁궐만이 남는다. 그제야 신비롭고 운치 가득한 궁궐이 보인다. 한국의 멋과 조용히 만나는 순간이다.

 

고궁은 오래, 자세히 봐야 한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다시 앞에서 그렇게 각도를 달리해 근정전을 바라본다. 곳곳에 걸린 청사초롱이 근정전의 처마와 지붕의 곡선을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높이 솟은 유리 빌딩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다. 옛 건축이 갖고 있는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강녕전으로 이동했다. 한여름이지만 시원한 기운을 담은 바람이 궁궐 내부로 스며든다. 푸른빛의 조명이 견고하게 시간을 머금은 강녕전의 외부를 휘감는다. 밤이 찾아온 강녕전은 고즈넉하다.

꽤 많은 사람이 고궁에 찾아온 밤을 반가워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이번엔 강녕전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궁도, 사람도 보는 재미가 크다.

 

역시 여름밤이라서 그런가. 운치 가득한 강녕전을 바라보니 잠시 잃었던 아날로그 감성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눈도 한결 맑아졌다. 수목에 둘러싸인 고궁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다. 아무래도 ‘힐링’은 이런 고즈넉한 고궁과 잘 맞는 일인 듯싶다. ‘아, 조선 오백년 고도(古都)의 시대가 진짜 있었구나.’ 문득 달빛이 비치는 강녕전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 야간 특별관람의 백미는 단연 경회루다. 낮에는 대형 연못 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2개의 누각만 보이지만, 어둠이 낮게 깔리고 조명이 켜지면 누각과 수목이 연못 위로 번지는 장면이 보인다.

교태전에서 나와 경회루로 가는 고즈넉한 길목.
교태전에서 나와 경회루로 가는 고즈넉한 길목.

경관 조명이 켜진 창경궁 명정전과 주변의 건물들.
경관 조명이 켜진 창경궁 명정전과 주변의 건물들.

문 하나 두고 과거와 현대 교차
돌아서면 홍화문, 다시 뒤로 돌면 도시의 밤

이런 장관은 창경궁에서도 볼 수 있다. 관람 구역은 홍화문, 명정전, 통명전, 춘당지, 대온실 권역이다. 창경궁을 방문했으면 1909년 건립된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과 연못 안에 인공 섬이 놓인 춘당지를 꼭 보고 가자. 경치가 대단하다. 백등이 설치된 대온실은 대낮인 듯 환하다.

 

어느덧 폐장시간이다. 홍화문 밖으로 나오니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 하나를 두고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뒤돌아서면 홍화문인데, 다시 뒤로 돌면 온갖 불빛으로 가득한 서울의 밤 풍경이다. 한여름 밤의 궁궐 여행이 끝났다. 잠시, 꿈을 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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